• 행사앨범

  • 사진영상

  • 옛 사진첩

행사앨범
  • thumbnail
    0
    2020-01-11
  • thumbnail
    0
    2019-10-30
  • thumbnail
    0
    2019-10-30
  • thumbnail
    0
    2019-10-30
  • thumbnail
    0
    2019-10-30
  • thumbnail
    0
    2019-10-30
  • thumbnail
    0
    2019-10-30
  • thumbnail
    0
    2019-10-30
  • thumbnail
    0
    2019-10-30
  • thumbnail
    0
    2019-10-30
  • thumbnail
    0
    2019-10-30
  • thumbnail
    0
    2019-06-30
  • thumbnail 2019-05-19
  • thumbnail
    0
    2019-05-01
  • thumbnail 2019-04-30
  • thumbnail 2019-04-30
사진영상
  • thumbnail
    0
    2019-03-18
  • thumbnail
    0
    2018-11-01
  • thumbnail
    0
    2018-05-04
  • thumbnail
    0
    2018-03-26
  • thumbnail
    0
    2017-08-16
  • thumbnail 2017-04-26
  • thumbnail
    0
    2016-12-22
  • thumbnail 2016-11-06
  • thumbnail
    0
    2016-05-17
  • thumbnail
    0
    2016-05-17
옛 사진첩
  • thumbnail 2013-12-09
  • thumbnail
    0
    2013-12-03
  • thumbnail
    0
    2013-11-25
  • thumbnail
    0
    2013-11-04
  • thumbnail
    0
    2013-11-04
  • thumbnail
    0
    2013-11-04
  • thumbnail
    0
    2013-11-04
  • 2013-10-30
  • 2013-10-30
  • thumbnail
    0
    2013-05-14
  • thumbnail 2013-05-13
  • thumbnail 2013-04-29
  • 0
    2013-04-28
  • 0
    2013-04-28
  • 0
    2013-04-28
  • 0
    2013-02-25
조회 수 5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95월 선기회 예배보고서

 

일 시 : 201959() 1230

장 소 : 사대부고 총동회관, 301호실

 

지난 429일 봄 소풍은 서산의 안면도와 개심사 관광으로 즐거웠습니다. 안면도 수목원의 아산원 조경도 멋지지만, 해안가 리솜 오션캐슬에서의 회정식 점심식사는 일품 이었습니다, 특히 대전지역 동문들 노준용, 박기양, 차승희의 만남과, 양재현 동문의 대동으로 고창으로 귀국한 김종만 동문의 등장은 우리들의 기쁨이 배가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근래엔 동기들의 애사가 나서 우리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신덕애 동문의 뇌출혈 과 윤상진 동문의 상처 소식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함께 치유와 위로의 기도를 드립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문광호 동문을 마중하느라 예배시간이 좀 늦어졌지만 만남의 기쁨이 301호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오늘도 우리들의 예배를 다음과 같이 드렸습니다.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찬 송 :----------9'거룩 거룩 거룩'---------다같이

기 도 :-------------------------------백창숙 권사

성 경 :--------레위기 1144~45,-----주현길 집사

설교문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회중 윤독

설교기도 :-----------------------------최현근 목사

(최현근 목사의 설교문은 별도로 올립니다)

 

찬송/봉헌 :344'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다같이

헌금기도 :-----------------------------주현길 집사

광 고 :

(1) 신덕애 동문이 뇌출혈로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오니 치료를 위해 주님께 중보기도 해 주십시오. 아울러 중환자실에서 나오면 문병 갈 수 있도록 덕애 동생 분에게 부탁했으니 방문예배를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오늘 예배 후 백창숙, 최현근, 신동복, 오세춘, 문광호, 김명현 동문들이 성북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함태임 동문을 방문하여 마비의 치유를 간구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함 동문의 밝은 모습에 감사합니다.

(3) 성우회에서 제12회 선농기독인 연합감사예배를 다음과 같이 알려왔습니다.

일시 : 201963, 월요일 오후 6

장소 : 주내힘교회 (3호선 약수역 5번출구)

설교 : 김정환 목사(26), 인도 : 박주윤 회장(26)

총 동문의 연합예배 이오니 시간을 미리 내시어 많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3) 현재 우리 동기들 중에는 몸이 불편하여 외출을 못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알려지기를 꺼려하는 입장들이 있어 이름을 발표하지 않지만, 최현근 목사가 이름을 기록하고 기도할 때 마다 호명하며 중보기도 합니다. 우리들도 그들이 치료받기를 힘써 기도하며 방문예배의 기회를 만들어 봅시다.

(4) 우리 회원들의 가정에 아직 출가하지 않은 자녀들이 많이 있어서 우리의 으뜸 기도제목이 되어있습니다. 김명현 동문의 아들 송기원, 김성구 동문의 아들 김진호, 박효진 동문의 아들 이승현과 딸 이혜림, 백창숙 동문의 딸 임유진, 윤봉천 동문의 아들 윤상현과 윤도현, 주현길 동문의 아들 주재용 등 입니다. 최현근 목사가 수시로 호명하며 기도하고 있으니, 우리도 함께 뜻을 모아 그들이 속히 배필을 맞아 가정을 이루도록 중보기도 합시다.

폐 회 :---------------주기도문--------------다같이

회 계 :

0411. 전달이월금----1,444,155.-

0509. 헌금입금--------60,000.-

0509. 회의실사용과 복사비-------------20,000.-

0509. 이달이월금----1,484,155.-

 

오늘은 우리가 가장 위급한 뇌졸중 상태를 빨리 확인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문으로 빨리 라는 뜻의 FAST를 기억하게 했습니다.

Fface, Aarms, Sspeech Ttime 으로 얼굴, 팔다리, 말하기 등이 이상하면 시간을 지체 말고 바로 병원을 방문하여 진찰을 받아야 한답니다.

70대의 우리는 어딘가 고장이 나기 쉬운 상태입니다. 따라서 항상 자신을 돌보며 성인병 치료에 신경을 써야합니다. 성인병은 아프지 않기 때문에 늘 건강하다고 간과하기 쉬워서 본인이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자신을 돌보는 성인병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 점심식사비는 김명현 동문이 지불했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선기회 회장 주현길 올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11:44-45)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19:2)

 

1. 하나님의 거룩하심

 

1) 거룩의 의미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거룩함이란 개념 자체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거룩함이라는 개념도 없는 것입니다. ‘캐도쉬 이스라엘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는 뜻입니다. 이사야서에서만 20번 나옵니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거룩’(카도쉬)이란 말의 어원적 의미는 구별’(separation), 그리고 밝음’(brightness)입니다. 거룩함은 구별됨입니다. 죄악된 것과 조금도 섞이지 않는 초월성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더러운 땅의 모든 것이 결코 닿을 수 없는 하늘에 계신분이십니다. ‘밝음, 더럽고 어두운 것이 없는 순수함깨끗함의 뜻입니다. 죄가 없는 상태입니다. 어둡고 왜곡되고 비뚤어진 것이 없는 온전함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영광입니다. 밝은 빛과 같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1:17).

 

성서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고백할 때, 그것은 이 세계를 완전히 초월해 있다는 의미에서의 거룩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그는 불가침의 존재이며, 분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측량할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도달할 수 없는 전적인 타자로서 존재합니다. 그의 거룩성은 가장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그분의 본질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거룩성은 정적인 것이 아닌, 역동적인 힘으로서 심판과, 사랑의 형태로 인간에게 다가와서 인간으로 하여금 거룩한 생활에 참여하라고 요구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11:45)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15:40)

 

2) 거룩하신 하나님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을 개시한 주전 739년경의 유다 왕국은 그야말로 부정과 불의가 판을 치던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무시되고 이방의 우상 숭배 풍조가 횡횡하였습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같이 술객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2:6-8)

 

정치가들은 하나님 대신 이방의 군사력을 의뢰했으며 종교 지도자들은 관원들과 결탁하여 '악법'을 제정하여 백성들의 재산을 수탈하기에 급급했었습니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1:23)

 

이에 선지자 이사야는 비분강개하여 성전에서 기도를 하던 중 '하나님의 영광'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하나님은 유다 민족의 부정과 불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큰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5)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들의 불의와 죄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신 '거룩하신'분으로 성경은 증언을 합니다. 함께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

 

존재적으로 구별되신 분이심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15:11)

 

위 말씀은 모세의 고백입니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거룩'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피조물인 만물과 인생들과 '구별''창조주''섭리주'로서 계시는 분이십니다. '인간''곤충'과는 엄연히 '존재적'으로 구별되듯이 하나님은 절대적인 거룩한 ''으로서 우리 인생들과 구별된 분이심을 뜻합니다.

 

완전 무흠하신 분이심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6:3)

 

'거룩거룩거룩'이라고 천사들이 찬양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완전 무흠'하다는 사실을 시사해 줍니다. 아무리 의로운 인생일지라도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또 그 삶에서 도덕적으로 '흠집'이 없는 이들도 없을 것입니다. 민족의 불의와 부정에 비분강개한 '이사야'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6:5)라고 절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은 인간들과는 달리 존재적으로는 ''이시요 윤리 도덕적으로는 '완전 무흠'하신 존재로서 '절대적'으로 인간과 인간 세계와는 '분리되신'분으로 계심을 인식합시다.

4) 거룩하신 하나님의 특성

 

죄악을 행치 않으심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34:10)

 

하나님은 인생들이나 창조하신 만물들에게 결코 '악이나 불의'를 행치 않으십니다. '죄악'을 불인정하시고, 용납하지 않으시는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참조; 59:1,2 ;1:13).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이 시험받을 때에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고 원망 불평하지 말 것을 주의 시켰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1:13)

 

거룩하심을 요구하심

 

소극적인 의미로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의 죄악을 원치 않으시고 적극적인 면으로는 인생들의 '거룩한 행위'를 기뻐하십니다.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15:9)

 

그리고 필연적으로는 하나님을 닮아 '거룩함에 이르라'고 요구하십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12:14)

 

거룩한 희생을 치루심

 

이 하나님의 '거룩성'이 온전히 계시된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사건이요, 십자가의 대속 사건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그와 같은 '적극적인 거룩적 행동'이 하나님께 없었더라면 기독교의 하나님도 인간들이 지어 낸 신화적인 신과 다를 바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스스로 거룩하신 분이시요 또 인생들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는 분으로만 머무르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거룩을 행하셨으니 바로 불의한 인생들에게 당신의 '거룩한 성품'을 선물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속죄를 해주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절대 불의한 인생들의 죄값을 몸소 담당하신 '희생'인 셈입니다. 이 십자가의 희생 앞에서 인생들의 '진정한 거룩'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5)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그리스도의 속죄 은혜를 힘입음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성과 그 요구를 반영해 줍니다. 그 율법안에서 인생들은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는 '절대적 간격'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참조; 7:12-15). 그러므로 오직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은총을 힘입어야만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3:21-22)

 

바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성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셈입니다(참조; 3:25-27).

 

겸손함과 회개하는 생활을 해야 함

 

성도들은, 하나님은 언제나 절대적 거룩자요 우리는 항상 상대적 불완전자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허'한 자의식을 지니고, 늘 회개하여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삶을 구현해야 합니다.

 

 

2. 인간의 거룩

 

1) 거룩은 의식을 잘 지내는 것이 아님

 

구약백성이 거룩을 깊이 있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바벨론 포로 시기입니다. 사실 레위기에서 거룩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그들의 정체성은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며 자아도취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거룩(구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종교의식을 형식에 맞추어서 지키는 것이 거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처럼 제사 지내는 것에 정성을 쏟는 민족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화려한 예복을 차려입은 제사장이 갖은 폼을 잡고 손을 휘휘 저으며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그 엄숙함과 경건함에 고개를 숙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문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1:10)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하는 종교의식, 그들이 보여주는 거룩함에 넌더리가 나셨습니다.

 

그들이 거룩을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하고 바빌론에 포로가 끌려간 이후였습니다. 그들은 발목에 쇠고랑을 차고 1,440km를 걸어 바빌론에 도착하였습니다. 세계적인 대 제국 바빌론은 유대인을 압도하였습니다. 이슈타르 문과 지구라트, 공중정원은 예루살렘의 그 어떤 건물보다 크고 장엄하였습니다. 제국의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빌론의 과학, 건축, 의료기술은 탁월하였습니다. 유대인은 이름을 바빌론 식으로 바꿔야 했고, 언어도 새로 배워야했습니다. 적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부딪친 문제는 바로 정체성이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인가? 우리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저 숨죽이며 바빌론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복종하고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은 곧 거룩을 새롭게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거룩은 말 그대로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바빌론과 분명한 경계를 유지하고, 문화적으로도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베드로가 1세기 신약 성도들에게 세상의 문화와 구별된 삶을 살라고 요구했던 것과 같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밷전 2:9)

 

 

2) 거룩은 분리된 삶이 아니라 긴장된 삶

 

거룩은 세상에서 도피하여 수도원으로 숨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일같이 어깨를 부딪치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구별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구별은 분리가 아니라 긴장인 것입니다.

 

고레스 칙령으로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로 거룩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들이 추구했던 거룩은 분리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참으로 거룩하기 위해서 다른 민족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 설령 결혼했다 할지라도 과감히 이방여인을 버려야 한다.’ 그들은 이방여인을 추방하지 못한 사마리아인은 개와 같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방으로 높은 벽을 쌓고 자신은 구별된 백성이며 거룩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에스라와 느헤미야서 뒤를 잇는 에스더서를 읽으면 거룩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봅니다. 에스더는 이방 왕과 결혼하고 페르시아 문화에 동화된 여인이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시각으로 보면 거룩과 거리가 먼 여인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민족이 위기를 당할 때 목숨을 걸고 동포를 구원하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신앙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그녀는 세상에 살았지만,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참된 거룩은 세상과 분리되어 고고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살면서 세상 일에 깊이 개입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세상과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긴장된 삶입니다. 한마디로 해서 개입하되 순응하지 않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문화가 아무리 거대하고 화려하고 유혹적이라 하지만, 결코 그들 앞에 머리 숙이지 않는 삶입니다. 세상의 문화가 속되고 부패한 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꼴 좋다비웃지 않고, 비판할 때는 목숨 걸고 비판하고, 개혁하고 정화하는 일에 적극 개입하는 삶입니다.

 

다니엘은 혼자 거룩한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속 정부에 들어가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들과 동화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벨사살왕에게 생명을 걸고 제국의 멸망을 예언하였습니다. 거룩은 삶의 현장에서 세상과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의 능력으로 로마를 정복하였습니다. 그들이 길거리에 나가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쳐서가 아닙니다. 온 몸에 십자가를 휘감고 나가서 전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이 보고 깜짝 놀라 요동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요구하지 않고, 자신들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 안에서 살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삶으로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거룩이란 말만 들어도 불편해 하는 경향이 있는데 거룩함은 그렇게 특수하고 별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거룩함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5-16)

 

거룩은 사랑과 은혜와 용서와 환대를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건전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날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참된 거룩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483 선기회 10월 예배보고서 주현길 2020.10.26 5
482 선기회 1월 예배보고서 주현길 2020.10.26 4
481 선기회 12월 예배보고서 file 주현길 2019.12.23 1098
480 선기회 11월예배 보고서 주현길 2019.11.29 87
479 선기회 9월예배 보고서 주현길 2019.11.29 93
478 선기회 10월예배 보고서 주현길 2019.10.29 103
477 선기회 7월예배 보고서 주현길 2019.07.19 88
476 선기회 6월예배 보고서 2 file 주현길 2019.06.27 909
» 선기회 5월예배 보고서 주현길 2019.06.27 59
474 선기회 4월예배 보고서 주현길 2019.06.27 81
473 선기회 3월 예배보고서 주현길 2019.03.31 124
472 선기회 2월 예배보고서 주현길 2019.02.17 123
471 선기회 1월예배 보고서 주현길 2019.01.25 106
470 선기회 12월 예배보고서 file 주현길 2018.12.24 106
469 선기회 11월 예배보고서 주현길 2018.11.18 124
468 선기회 10월예배 보고서 주현길 2018.10.23 162
467 선기회 9월 예배보고서 주현길 2018.09.22 138
466 선기회 7월예배 보고서 주현길 2018.07.17 208
465 선기회 6월예배 보고서 file 주현길 2018.06.26 247
464 선기회 5월 예배보고서 주현길 2018.05.27 19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